2026.02.05. 대한경제에 법무법인 YK 조인선 변호사의 기고문이 게재되었습니다.

2026년 1월 27일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 4주년이 되었다. 중처법 시행을 앞두고 법 시행이 예고되었을 때부터 안전보건체계구축을 위한 자문을 하기 위해 각 현장을 방문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느덧 4년이 지나갔다.
중처법의 효용론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특히,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의 현실에 비해서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 후 대기업부터 중소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점, 안전인력을 양성하고 안전작업시설을 유지보수 및 증설한 점, 스마트 안전시스템 구축에 대한 열의가 높아진 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모국어로 안전 관련 중요사항을 전달하는 점 등의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점은 중처법의 순기능이다.
법 시행 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온 ‘경영책임자’의 특정과 관련하여, 최근 하급심 판결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9호 가목은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CEO) 또는 이에 준하여 안건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CSO)’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는’의 의미가 통상인의 언어에서는 ‘선택적’인 것으로 해석되지만, 그동안의 수사 관행 및 판결에서는 ‘중첩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별도로 CSO를 선임해둔 경우에도 CEO가 경영책임자로서 처벌을 받곤 했다.
그런데 최근 법원은 사업총괄책임자(CEO)와 별도로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선임되어 있는 경우에는 CEO는 경영책임자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면책되고 CSO만이 경영책임자 등에 해당하여 중처법 적용을 받는 수범자(受範者)가 된다고 판시하였다. 물론 이는 일괄적으로 모든 기업에 대하여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개별적·구체적 사실관계 및 해당 기업의 운영형태 등을 파악하여 CSO가 문제되는 사안에 관해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정된다.
실제로 사고현장을 가보면 각 기업의 상황은 매우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판례는 이 점에 주목한다. 기업 내부의 업무 분담과 의사결정 구조의 결정은 사적자치(私的自治)에 맡겨져 있으므로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대표이사가 CSO에게 완전히 위임하는 것이 금지된다고 볼 법령상 근거는 없다. 사업 분야도 다양하고(제조업부터 건설업까지 다양한 사업목적을 가진 기업도 많다), 임직원도 수백 명이 넘는(1만 명을 넘는 경우도 다수 존재한다) 대기업의 경우 각 사업 분야마다 안전보건 업무의 내용이 다를 수 있다. 대표이사에게 모든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것보다 각 사업 부문별로 안전보건에 관한 총괄 책임자를 선임하는 것이 종사자들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데 더 충실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주장해온 내용에 드디어 손을 들어준 이 부분 판례의 적시에는 조용히 읽다 말고 박수를 칠 뻔했다.
특히, CSO가 안전보건업무에 한하여 사업총괄책임자와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한정된다면,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실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중처법의 입법 목적에도 부합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법에서 요구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조치의 내용들이 모두 반드시 대표이사가 결정권을 행사하여야만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은 아니고 상당 부분 위임될 수 있는 성격의 업무라는 점도 확인되었다. 안전보건 예산의 집행 등을 둘러싼 다층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지닌 기업의 경우 구체적인 운영형태에 따라서 종국적인 법적책임의 주체가 되는 경영책임자를 확정하게 될 것이다. 만일 위임된 안전보건업무가 부실하게 이루어져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CSO가 법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중처법 4년. 이제 법은 또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 책임을 ‘넓게’ 묻는다고 안전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책임을 ‘정확하게’ 묻을 때 비로소 안전이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비록 상급심을 남겨놓고 있지만 중처법이 ‘상징적 처벌’에서 ‘실질적 책임’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